(펀드업계 GIPS 바람)①`체리피킹` 이제 그만 (이데일리)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와 정책적 지원은 물론이고 국제공시기준(IDS), 국제회계기준(IFRS) 등 글로벌 기준 도입을 통해 선진금융시장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펀드 업계에도 국제표준 도입 바람이 거세다. 올들어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국제투자성과기준인 GIPS를 적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GIPS를 도입하면 가점을 주기로 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투명한 성과를 제시하기 위해서도 GIPS 도입은 필요하다. GIPS가 갖는 의미와 업계 도입 현황, 정착을 위한 과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금융위기가 진정되며 코스피 지수가 1400선까지 올라오자 직장인 A씨는 그동안 예금으로 돌려놨던 자산을 다시 주식형 펀드에 투자키로 마음 먹었다. 이번에 넣어두면 5년 정도는 묻어둘 생각인 A씨는 비교적 안정적인 가치주 펀드를 염두에 두고 여러 펀드를 검색했다. 각종 펀드 수익률을 비교해보니 천차만별이다. 기간을 3개월로 보느냐, 1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제각각이었고 한 운용사가 운용하는 같은 스타일의 펀드인데도 수익률이 다양했다. 가치주 펀드로 유명한 한 운용사 펀드는 제일 수익률이 좋은 기간만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운용사 선택부터 펀드 고르기까지 혼란스러웠다. 자산운용사들이 GIPS를 도입하면 이제 이런 고민은 줄어든다. 과거 5년간 가치주 스타일의 펀드를 가장 잘 운용한 자산운용사를 추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장된 펀드 수익률까지도 모두 반영되는 만큼 수익률이 좋은 펀드만 골라 제시하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 국제표준 맞춰 펀드 평가한다 GIPS는 국제투자성과기준(Global Investment Performance Standards)의 약자다. 말 그대로 운용성과를 산정하는 국제표준이다. 과거 국가마다 자산운용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달라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국가별 성과를 비교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성과평가에 대한 국제적 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CFA협회(CFA Institute, 당시 AIMR)는 1987년 자체 성과평가 기준(AIMR-PPS)을 만들었고 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사용됐다. 글로벌하게 쓰일 수 있는 국제 표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1995년 GIPS위원회가 설립됐고, 각국 전문가들간의 협의를 거쳐 1999년 GIPS 기준이 마련됐다.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30개국이 GIPS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GIPS위원회(KGC)가 발족돼 작년 6월 GIPS집행위원회로부터 공식 한국 스폰서로 인증을 받았다. 한국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본부가 KGC 활동을 실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GIPS 위원회는 GIPS를 준수하는 것은 국제적 투자운용 경쟁의 장에 진입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허용하는 `여권(passport)`으로서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 유형별로 5년간 평균 수익률 산정 GIPS의 가장 큰 특징은 동일한 투자목적과 전략을 갖고 있는 그룹을 하나의 집합체(composite)로 구성해 컴포지트 단위로 수익률을 계산한다는 것이다. 펀드 투자대상이 주식형인지 채권형인지, 대형주인지 소형주인지, 성장주인지 가치주인지, 혼합형인지 등에 따라 유형별 수익률을 산출하는 것. 예를 들어 수익률이 높고 성장성을 지닌 소규모 자본의 주식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는 모두 `소형-성장`(small cap growth) 컴포지트로 묶어 펀드 규모에 따라 수익률을 가중평균한다. 이렇게 되면 운용사별로 어떤 유형의 펀드 운용 능력이 뛰어난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기간도 최근 1~2년이 아닌 과거 5년치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만약 컴포지트를 설립한지 5년이 안되는 경우 설립 이후의 성과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장기간 운용사의 운용능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된다. 5년치를 분석한 이후 매년 연간 투자성과를 추가해야 한다. 신장섭 한국채권평가 이사는 "GIPS는 사장된 펀드나 만기가 된 펀드, 운용사 재량권이 있는 펀드의 수익률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며 "이에 따라 완벽하고(full) 공정하게(fair) 성과를 측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 수익률 왜곡 방지..신뢰도·투명성 `레벨업` GIPS를 도입하면 일단 `체리 피킹`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즉, 좋은 성과를 달성한 펀드를 골라서 발표했던 관행이 사라지고, 또 성과측정기간이나 방법상 기준이 모호함에 따라 발생했던 운용성과 왜곡이 완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기존에는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수익률을 명시하면서 가장 수익률이 좋은 기간을 내세웠지만, GIPS를 도입하면 5년 단위로 산정하기 때문에 특정 기간을 선정해 수익률을 부풀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만큼 성과에 대한 신뢰도와 투명성은 높아지게 된다.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국제 표준으로 성과를 제출하기 때문에 비교평가가 가능하고 잘하는 펀드보다는 전체적인 운용능력을 볼 수 있다"며 "연기금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 나아가 개인들한테도 판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GIPS는 외부에 공표해야 하는 의무가 없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에게 주로 제공되겠지만, 앞으로는 개인들에게도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자산운용사들은 그동안 내세울만한 대표펀드만 집중적으로 관리해왔지만, 펀드의 평균 수익률을 내게 되는 만큼 모든 펀드에 골고루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국제 표준인 만큼 자산운용사들이 해외 마케팅에 나설때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자회사가 많은 미래에셋이 발빠르게 도입한 이유기도 하다. 박준서 한국언스트앤영 상무는 "해외 투자자들은 운용사를 평가할때 GIPS를 적용했는지를 먼저 본다"며 "GIPS 도입시 해외 마케팅에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