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시대 펀드전략)②자본시장법이 펀드시장 죽인다? (이데일리)

[이데일리 장순원기자] 최근 브라질 증시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펀드투자자 A씨. 브라질 관련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1년여만에 펀드 판매 창구에 들렀다. A씨는 처음엔 당황했다. 전에는 짧게는 몇 분이면 뚝딱 가입했는데, 투자자 성향파악과 펀드 설명을 듣는데만 30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짜증도 났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 투자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펀드에 가입했던 1년전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것만은 부정하지 못했다. 수익률 반토막을 경험했던 A씨는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착실히 설명해 주는 투자문화가 더 빨리 도입됐더라면 하는 아쉬움마저 느꼈다. 자본시장법(이하 자통법)이 시행된 지 석달이 다 돼간다. 한층 강화된 투자자 보호제도가 처음 도입되면서 일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무난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통법 시행이후 펀드시장의 체질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이지만 발전된 질적변화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자산운용사나 판매사 등 관련 업계에서는 자통법 시대 새로운 움직임에 발맞춰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 시행초기 혼란..이후 진행과정 `무난` 자통법 시행 초 혼란은 불가피해 보였다. 길었던 논의 과정에 비해 준비가 부족했던 데다 제도와 관행의 틀을 큰 폭으로 바꾸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제도가 시행되면서 투자자나 판매사, 운용사 등이 느낀 변화는 상당했다. 가장 큰 변화는 고객의 투자성향을 파악해 적합한 상품만 추천할 수 있게끔 바뀐 것이다. 종전엔 불과 십여분이면 펀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통법이 시행되면서 펀드 가입에만 한시간 넘거 걸리자 투자자는 물론 판매사 모두 불만을 토로했다. 정용범 하나대투증권 영업부장은 "자통법 시행초기 고객 펀드 가입시간은 평균 40분, 자세한 설명을 하면 1시간이 넘는 경우도 많았다"면서 "바뀐 펀드 가입절차를 불편해 하는 고객들이 꽤 있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가입시에 고객성향을 조사해야하는지 여부와 판매사별로 위험 등급이 달라 혼란을 야기했던 점 등은 제도변화에 따른 대표적인 시행착오였다. 현재는 초기 혼란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범수 한국투자증권 개인고객전략부 차장은 "시행초기에 영업직원들 사이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지만 현재는 많이 좋아진 상태"라면서 "관련 프로세스를 개선하면서 펀드 판매시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도 자통법 시행은 초기 시행착오를 극복하면 다양한 측면에서 펀드시장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 중론이다. 설명의무나 적합성 원칙 도입되면서 불완전판매 소지를 확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입증책임이 판매사로 넘어가면서, 판매사들은 한층 세심하게 상품 설명을 하고 있으며 판매절차 등도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들은 표준투자권유준칙이 도입되면서 투자자나 판매사, 운용사들이 적응기를 거쳤다고 보면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제도나 관련 규정 등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표준투자준칙이 대표적이다. 서동필 우리투자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현행 펀드 위험등급 분류는 너무 획일화된 상태"라며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펀드시장 변화?…`아직은 제도보다 시장 영향 커` 당초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 까다로워진 가입절차 탓에 시장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근 전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140조원 안팎으로 지난 10월 이후 정체상태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자통법 시행 탓이라기 보다는 국내외 주식시장 영향이 크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까다로워진 가입절차가 펀드가입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기 보다 증시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펀드 가입을 자제했다는 얘기다. ▲ 5개 증권사 펀드판매 및 코스피 지수 추이 실제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굿모닝신한증권, 하나대투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 증권사에서 자통법 시행 직후인 2월 4일부터 9일 사이엔 약 1만2900개, 3월16부터 20일 사이엔 1만1500개, 4월6일과 10일 사이엔 1만3300개의 펀드를 팔았다. (왼쪽 그래프 참조) 증시 상황이 불확실했던 2월과 3월 중순까지는 펀드 판매가 감소세를 기록했으나, 시장 상황이 확실히 좋아진 3월 하순 이후엔 신규투자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위험상품 위주에서 위험도나 낮은 혼합형상품 판매가 늘 것이란 예상도 있었다. 이밖에도 다양한 상품이 쏟아질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다소 성급했다. 금융감독원 펀드공시에 따르면 자통법 시행 이후 21일까지 새로 출시되거나 출시될 펀드는 60개 안팎이다. 이들 상품들은 신상품이라기 보다 기존 상품을 일부 바꿔 내놓은 수준이다. 다양하고 획기적인 상품이 쏟아질 것이란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서동필 애널리스트는 "펀드시장은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며 "새 제도가 투자자들의 구매 행태나 펀드 설정액, 상품개발 등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자투리펀드`는 정리..인기펀드 출시는 쭉~ 자통법 시행 전이나 이후 현재까지 펀드 시장은 잠잠한 편이다. 시장이 아직까지 움츠러든 상태인데다가, 운용사 등이 신상품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간투법) 시절 설정된 펀드를 앞으로도 팔려면 자통법 체계로 전환해야하는 데 운용사들은 관련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안찬식 유리자산운용 상품개발팀장은 "간투법 체계 펀드를 자통법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만으로 힘에 부친다"며 "이러한 작업이 끝난 후에 새로운 상품 개발 등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세한 변화의 조짐들이 감지된다. 업계에선 먼저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서 자투리펀드를 정리하고 넘어갈 태세다. 우리은행은 종전에 150여개 펀드를 팔았으나 현재는 80개 수준으로 줄였다. 삼성투신이나 한국투신운용 등도 규모가 작고 신규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소규모펀드 중 일부를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좀 더 적극적 행보를 펼치는 곳도 있다. 최근 펀드시장이 움츠려들었지만 운용사들은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중국 본토투자펀드나 녹색펀드, 원유펀드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삼성투신운용의 `삼성 China2.0 본토펀드`, 최근 출시된 산은자산운용 `산은그린코리아주식형펀드` 등이 대표적 예다. 한국투신운용도 `WTI원유펀드`를 곧 출시한다. 강창주 하나UBS자산운용 마케팅 상무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운용사들이 새로 펀드를 내놓기가 녹록지는 않다"면서도 "시장 니즈(수요)만 있다면 펀드상품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련업계 `초반 탐색기 이후 행보 빨라질 것` 초반 탐색기가 지나가면 자통법 시대를 선점하려는 운용사나 판매사들의 행보가 더 빨리질 전망이다. 게다가 하반기 이후엔 경기침체에 벗어날 것이란 예상도 많아 펀드 시장에 우호적 환경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한정적으로 열거되어 있는 간접투자 대상자산을 자통법 아래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대상자산의 범위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운용사의 차별화된 상품개발 및 운용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될 전망이다. 운용사들은 이 부문에 역량을 집중해 승부수를 띄울 계획이다. 삼성투신은 올해 인덱스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전력을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현 주가수준 및 글로벌 경제여건, 고객들의 투자성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고위험 상품보다는 시장대비 안정적인 수익추구가 가능한 인덱스펀드 위주로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기존 주식형, 혼합형, 채권형 등 정통 펀드의 성장가능성이 여전히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특히 혼합형, 채권형 등 안정형 펀드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판단, 기존 혼합형펀드는 물론 해외혼합형, 해외채권형 등의 관련 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판매사의 경우 투자자보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상품 판매를 어떻게 극대화 시킬지 여부가 핵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신 경우엔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아 펀드 판매 등에 접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김혜준 대우증권 펀드애널리스트는 "아직은 법 시행초기라 시장상황, 감독기관 동향 등 여러 곳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긴 어렵다"며 "향후 투자문화가 어떻게 정착되는지 여부와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다양한 상품개발 등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