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이제는 내린다 (이데일리)

상당수 월가 전문가들이 고공행진을 계속해 온 유가가 이제는 오르기 보다는 내리막을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요 측면에선 일부 핵심 석유 소비국들의 소비가 약해질 것이 전망되고 있다는 점, 공급 측면에서도 새로운 유전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투기 세력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가 이런 주장의 핵심에 서 있다. ◇ 달러 강세보이면 유가는 떨어진다 달러화 가치와 유가의 상관관계를 논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은 이제 추세가 `달러화 강세-유가 하락` 쪽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인플레이션 공포가 사그러들면 유가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벤 S.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3일(현지시간)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없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달러가 반등했고, 유가가 떨어진 것은 이런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 닷컴버블 붕괴를 상기하라 일부에선 `닷컴 버블 조성-붕괴` 때와 유사한 점을 들어 유가 하락을 점치기도 한다. 리먼브러더스는 지난 주 낸 보고서에서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지속적으로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가격 전망치를 높여 제시하면서 유가 상승에 대한 베팅을 늘린 측면이 있고, 이 때문에 또 다시 가격 전망치를 높이는 순환 구조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리먼은 자산 버블의 전통적인 요소, 즉 군중 심리(herd instinct), 과거 궤적을 좇는 투자자들이 유가 버블 형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먼은 국부펀드와 같은 기관 투자가들이 상품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지난 2006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상품에 투자된 자금이 9000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1억달러씩 신규 유입될 때마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 가격은 1.6%씩 뛰었다고 분석했다. ◇ 소로스 "투기 세력 빠지면 유가도 빠진다" 억만장자 투자가 조지 소로스도 연일 유가 버블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 조지 소로스 소로스의 논리는 투기 세력이 유가 버블을 조장한 만큼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면 시장은 급격히 하락한다는 것. 3일 미 상원 증언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유가 버블은 상품 지수펀드에 대한 투기, 그리고 수급 때문"이라면서 "이런 유가 상승은 미국의 경기후퇴(recession) 전망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펴낸 자신의 10번째 저서 `금융시장의 새 패러다임`에서도 넘쳐나고 있는 `수퍼 버블`이 전세계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날 증언에선 "최근 석유 시장의 현상은 내 이론의 교과서적인 예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급 등 펀더멘털 외에도 잘못된 생각에 기반한 매수가 이뤄지면서 유가 버블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석유 전문가가 아니며, 현재 석유 관련 시장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시장은 매우 종잡을 수 없기 때문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면서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새로운 평형점 찾는 유가..급락은 없을 듯 하지만 여전히 유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클레이즈 캐피탈의 애널리스트 폴 호스넬은 "공급이 향후 5년간 늘지 않고 수요가 지난 4~5년간 그랬던 것처럼 급증하게 된다면 유가는 지속적으로 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최근 수 주간 투기 세력이 순매수에 나섰다"며 "그래도 3월에 비해선 투기세력이 덜 기승을 부렸다"고 말했다. 실제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들의 유가의 추가 상승에 대한 베팅은 줄어들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투기세력들의 유가에 대한 순매수 포지션은 5월 말(5월21일~27일) 2만5867건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고에 달했던 지난해 7월31일 12만7491건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것. 특히 헤지펀드들은 올해 달러화가 36%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급격한 하락을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 유가가 배럴당 135달러까지 가파르게 오른 뒤 이제 새로운 평형점을 찾고 있다는 것.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가이 카루소 애널리스트는 전세계적으로 공급이 여전히 빠듯하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유가는 내년까지 배럴당 100달러 근방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미국의 소비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중국 등 개발도상국 수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 석유 생산국들의 내부 수요가 늘면서 수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점 등은 유가가 계속해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을 점치고 있는 리먼의 경우 사우디 아라비아의 신규 생산이 조만간 이뤄지고 러시아가 석유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제 성장이 완만해지며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점에서 수 개월 안에 수요-공급 구조가 변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리먼의 마이클 월드론 애널리스트는 "이런 모든 사안들이 유가에 상당한 조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연말까지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