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뿌리 잘 내리고 있나(이데일리)

- 퇴직연금 초기, DC형 계약건수 압도적 다수...'의외' - 분쟁가능성 예고..상품설명 충분히 전달해야 [이데일리 배장호기자] 퇴직연금 초기시장이 당초 예상과 달리 근로자들이 투자위험을 짊어지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퇴직계좌(IRA)' 위주로 형성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9일 제도 시행 이후 올 1월말까지 221억4000만원의 퇴직연금 계약이 체결됐다. 이 중 확정급부(DB)형이 74억5000만원(33.6%), DC형이 75억원(33.9%), IRA가 71억9000만원(32.5%)을 각각 차지했다. 연금자산의 운용을 회사가 책임지는 DB형과 달리 DC형과 IRA는 근로자와 개인이 적립금의 투자결정과 그 성과를 책임진다. 종업원수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채택하는 기업형 IRA의 경우엔 사실상 DC와 동일한 제도이다. ◇ DB위주가 될 것이란 예상 빗나가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초기 퇴직연금 시장은 회사가 연금운용을 책임지는 DB형보다는 근로자와 개인이 책임지는 제도가 2배 이상 많은 셈이다. 이 사실은 계약 건수별로 따지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데일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은행을 통한 퇴직연금 계약 1294건 중 약 1000여건이 IRA형과 DC형, 220여건만이 DB형이었고, 증권사와의 계약도 18건중 16건이 DC형이었다. DB형이 압도적일 것으로 예상되던 보험사 계약도 전체 83건 중 20여건만이 DB형이었으며 나머지는 DC형과 IRA였다. 전체 계약건수 중 80%에 가까운 비중을 IRA를 포함한 DC형태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확정기여형 선호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제도 초기에 대형 사업장보다는 중소 사업장 위주로 제도가 먼저 도입된 데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노동조합이 강력한 중견급 회사나 대형 업체의 경우엔 퇴직연금 제도 자체의 도입이 쉽지 않다"며 "일단은 계약 성사가 손쉬운 은행, 증권사 등의 주요 거래선인 중소 사업체가 주 타켓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사업장의 경우 노조가 아예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사측이 우월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사측이 퇴직연금 제도를 신속히 결정할 수 있는 점을 금융기관들이 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금 사업자들의 마인드는 경영진에 비해 열위에 있는 소규모 사업장 종업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 대출과 연계해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소위 '꺾기'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마케팅을 둘러싼 건전성 논란이 향후 불거질 전망이다. ◇ 근로자에게 상품설명 충분히해야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퇴직연금 컨설팅업체 왓슨와이어트(Watson Wyatt)의 은용환 상무는 "한국의 초기 퇴직연금 시장에서 규약 체결이 직원과의 충분하고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연금 제도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근로자에게 혜택을 주고자 하는 것이고 수십년을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DC형 도입시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간에 회사는 직원들이 투자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자세히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C형은 운용사들의 투자성적을 토대로 연금이 정해지는 상품이다. 펀드운용이 자칫 잘못될 경우 마이너스 성적으로 낸 것만큼도 되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DC형 퇴직연금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경우 가입자들은 충분한 이해없이 상당한 위험을 지게 되고, 향후 투자성과가 기대수준과 차이를 보이게 될 경우 노사갈등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와함께 적립금의 보관과 관리 등 자산관리업무와 제도 설계, 상품 제시 등 운용관리업무를 한개 금융회사가 도맡아 하고 있는 현재의 관행도 제도 운영의 투명성 유지, 이해 상충 방지 등에 허점을 노출할 수 있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은 DC형이든 DB형이든 근로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도가 금융권의 새 수익원으로만 인식되거나, 자본시장 부양을 주목적으로 위험투자를 권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