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rd SRE]우발채무·ELS 리스크…증권업 경고등

- 신평 3사 한목소리로 위기 촉발 뇌관 가능성 제기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증시 활황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글로벌 경기 둔화 여파로 국내 증시가 다시 조정받으면서 증권사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증권업을 향한 우려의 시선을 한동안 거둬들였던 크레딧시장의 눈초리 역시 다시 매서워졌다. 단순히 업황 변화에 따른 실적 부진 가능성만 염두에 두는 게 아니다. 우발채무와 파생결합증권 리스크, 자본규제 변화 등 증권업 신용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을 지적하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증권업을 바라보는 의심 어린 시선은 23회 SRE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설문에 참여한 141명 중 12명(8.5%)이 최근 6개월 내 업황이 나빠진 산업으로 증권을 꼽았다. 17개 업종 가운데 7위다. 얼핏 득표율이나 순위가 그리 높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그간 업황 악화 산업 순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증권이기에 이번 순위 상승은 주목할만하다. 당장 22회 SRE 당시 득표율(1.9%)보다 훨씬 높아졌다. 앞으로 1년 내 업황이 개선될 산업을 묻는 설문에서는 고작 9명(6.4%)으로부터 선택받는데 그쳤다. 이 역시 22회 때 응답자 159명 중 21명(13.2%)으로부터 지목받은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중심의 수익 구조로 이뤄진 탓에 주식거래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던 증권업은 2014년과 2015년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뚜렷한 부활 조짐을 나타냈다. 작년 상반기에는 주식 거래대금 증가와 기준금리 하향 안정화 등에 힘입어 반년 만에 직전년도 전체 순이익을 벌어들일 정도였다.

하반기에는 거래가 다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위탁매매 수익이 줄어들고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급락에 따른 주가연계증권(ELS) 평가손실이 불어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내긴 했지만 전반적인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과 총자산이익률은 각각 3조2000억원, 0.93%로 2014년의 1조7000억원, 0.52% 대비 대폭 개선됐다. 총자산도 2014년 313조6000억원에서 344조5000억원으로 30조9000억원 불어났다.

그러나 이 같은 수익성 개선에도 증권업 신용도가 동반 호전된 것은 아니다. 한기평의 경우 지난해 증권사 7곳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실적 개선의 주된 배경이 주식 거래대금 증가에 의한 것으로 시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대금 증가와 더불어 증권사 실적 호조를 이끈 투자은행(IB) 부문의 수수료 증가는 되레 우려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당 부분이 우발채무 증가와 관련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발채무 급증…위기 촉발 뇌관 가능성 제기

우발채무란 당장엔 채무가 아니지만 장래에 일정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채무로 확정될 수 있는 잠재적인 채무를 말한다.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발채무가 증권업 위기를 촉발할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위탁매매 수익 감소를 상쇄하는 신규 수익원 확보 차원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보증을 서주고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면서 우발채무는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부동산 경기의 일시적인 회복세도 한몫했다.

매입약정과 채무보증 등 증권사 우발채무 잔액은 2014년 말 19조9000억원에서 2015년 말 24조2000억원으로 1년 새 22%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수익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기자본 5000억원~1조원 사이 중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우발채무는 현 시점에서 문제가 없을지라도 향후 주택경기가 꺾일 경우 엄청난 후폭풍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신평사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각종 보고서와 세미나를 통해 크레딧시장에 계속해서 증권사 우발채무의 위험성을 환기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감소세를 보이던 미분양주택이 지난해 4분기부터 증가세로 전환되는가 하면 올해부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우발채무 관련 잠재위험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신평사들은 당장 우발채무 위험을 반영해 증권사 신용등급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율이 높은 증권사군을 선정해 신용도 변화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도 증권사 우발채무 현황 파악과 더불어 규제방안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ELS 손실 공포 진정 기미…재발 우려는 상존

우발채무와 더불어 증권업의 신용도를 위협하는 또 다른 변수는 ELS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파생결합증권 발행이다. 위탁매매 수수료 외에 대체수익원을 확대하려는 증권사와 저금리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증권업 합산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은 2011년 3월 28조원에서 2015년 말에는 94조원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증권업 총 자산 내 파생결합증권이 차지하는 비중도14%에서 27%로 커졌다. 그러나 급히 음식을 먹으면 체할 확률이 높아지듯이 단시간에 덩치가 너무 커진 탓에 지난해 하반기 이후 파생결합증권 시장에는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특히 지난 1월 전체 ELS 발행잔액의 약 75%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나타내는 홍콩 H지수 연계 ELS가 중국 증시 폭락 충격으로 원금 손실 위기에 놓이면서 ELS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공포로 바뀌었다.

다행히 최근 글로벌 증시 안정과 더불어 홍콩 H지수 역시 반등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던 원금 손실 공포는 일단 진정되는 모습이지만 그렇다고 증권사의 위기 발생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파생결합증권 중 원금비보장형 상품과 자체 헤지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증시 전망이 빗나가면 헤지 관련 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 작년 3분기 전 세계 증시의 급등락 여파로 파생상품 운용 과정에서 1조3000억원 넘는 손실을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기초자산 급락 시 대규모 환매 요청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투자자 원금손실이 확대될 경우 평판 저하와 불완전판매 이슈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평사들은 증권업 신용등급 전망과 관련해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영업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부담하는 위험수준 역시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혁준 NICE신평 금융평가1실장은 “올 들어 수익성 전망이 부정적인 가운데 우발채무, ELS 이슈와 더불어 순자본비율 전면 적용, 레버리지 규제 도입 등의 자본규제 변화가 증권업 신용등급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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